한덕수 총리 지명자를 반대하는 이들에게 묻습니다

노무현의 고건은 되고

윤석열의 한덕수는 안 된다고?

내로남불 OUT!!

그것이 바로 진영정치가 낳은 맹목적인 당파성의 논리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월  고건 국무총리 후보자를 지명하면서 다음 두 가지 이유를 들었다.

 중국 베이징 현대자동차 공장을 시찰하는 한덕수 국무총리(2007년 12월 10일) / 사진 출처는 대한민국 국정브리핑
 중국 베이징 현대자동차 공장을 시찰하는 한덕수 국무총리(2007년 12월 10일) / 사진 출처는 대한민국 국정브리핑

첫째, 안정총리론이다. 노무현 정권의 핵심이 국정경험이 썩 많지 않은 사람들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관료들을 즉각 장악할 행정경험과 경륜이 풍부한 이른바 '안정총리론'이다.

둘째, 여소야대 국회의 인준 통과를 위해 정치형 총리보다는 무색무취하고 이력이 충분히 검증된 '실무형 총리론'이다. 즉,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의석은 겨우 102석으로 지금의 국민의힘+국민의당(109석)과 아주 흡사하였다.

고건 총리 후보자는 1938년생으로 당시 기준으로 만 65세였다.

고건은 박정희 정권에서 새마을담당관을 하면서 박 대통령 눈에 띄어 만37세에 일약 차관급인 도지사로 벼락 출세하였다. 그때가 유신폭정이 한창이던 1975년이었다.

전두환 신군부의 군사반란 당시인 1979년에는 정무제2수석을 잇달아 맡아 청와대에 근무 중이었다.

고건은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 순응하는 순응형이다. 고건은 1980년 9월 전두환이 체육관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취임하자 교통부장관과 농수산부장관을 연거푸 역임하며 신군부의 초기 정권안정에 기여(?)하였다.

그리고 1985년 12대 총선에서는 부친의 고향인 (고건의 출생지는 서울이다) 전북 군산옥구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해 2위로 동반 당선된다.

이어서 2년 후인 1987년에는 민정당 전북도지부장과 내무부장관을 역임하며, 6월 항쟁을 저지(?)하는데 앞장섰다.

1988년 소선거구제로 바뀐 선거에서 호남은 강력한 황색 돌풍이 불어 고건을 포함한 민정당 후보는 전원 낙선하였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총선 후 실시한 개각에서 곧바로 그의 재능을 아껴 관선 서울시장으로 불렀고, 1990년까지 근무하도록 하였다. 

한동안 휴식을 취하던 고건은 1994년부터 명지대학교 총장을 맡아 대학경영 업무에 종사하였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었다고 고건을 가만 놔두지 않았다. 김영삼 대통령도 1997년에 문민정부 마지막 국무총리로 그를 불렀고, 김대중 정권 출범 후 김종필 총리 미인준 상태에서 국민의정부 장관 제청권을 행사하고 총리를 사직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하였다.

1997년 최초의 평화적 정권교체기에 그는 구정권의 국무총리로 근무 중이었다. 그런데 행정의 달인을 서울시장으로 공천해야 하겠다는 김대중 총재(대통령)의 방침에 따라 1998년 제2회 동시지방선거에서 새정치국민회의 서울시장 후보로 나섰다. 고건은 이 선거에서 조선일보 편집국장, 3선 국회의원, 장관 3회, 관선 서울시장 경력의 만만찮은 최병렬을 상대로 9%가 넘는 차이로 너끈하게 승리를 낚아냈다.

2002년 서울시장 임기를 마친 고건의 공직운은 그것이 마지막이 아니었다. 앞에서 소개했듯 최악의 여소야대 상황에서 집권한 노무현 정권은 국회에서 국무총리 인준을 받기 위한 문제는 급선무였다. 고건의 선택은 불가피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심판 기간 고건은 대통령권한대행이라는 뜻밖의 횡재(?)까지 하게 된다.

훗날 노무현 대통령은 고건의 국무총리 임명을 실패한 인사라고 공개 저격하고, 고건은 이에 맞서서 자기 부정 아니냐며 따지는 등 많은 사람들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였다.

자, 이제 결론이다.

박정희 유신정권-전두환 신군부-노태우 정권-김영삼 정권-김대중 정권-노무현 정권 등 6개 정권을 거치며 장차관급 정무직 6회, 선출직 2회, 그리고 국무총리 2회를 역임한 고건은 행정의 달인인가? 아니면 처세의 달인인가? 그것도 아니면 배신의 달인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먼저 할 수 있다면 한덕수 총리 지명자에 대한 대답은 곧바로 나올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해마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참배를 가는 사람들이라면 더욱더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왜 그 두 대통령들은 처세의 달인, 배신의 달인이었던 고건을 발탁했을까?
 

최 광 웅 (대표기자, 본사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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