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힘겹게 정치하는 경숙 남숙 진숙 영숙 혜숙 희숙들에게 바침

 

지방정부의 장을 꿈꾸는,

모든 대한민국 여성정치인들에게 용기를 드린다

 

독일 현지시간으로 21일 프란치스카 기파이(Franziska Giffey) 사민당(SPD) 베를린 시장 후보가 정식으로 시장에 선출됐다. 베를린 시의회는 이날 본회의를 열고 기파이를 시장으로 선출했는데, 그녀는 사민당-녹색당-좌파당으로 구성된 적··적 연정을 5년간 이끌게 된다. 많은 외신들은 동서독 통일 이후 처음으로 베를린 시장에 여성이 선출됐다고 소식을 쏟아냈다. 물론 알려진 그대로 기파이는 동서독 통일 이후 처음으로 베를린 시장에 선출된 여성이 맞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베를린이 동서로 나뉘었던 1949~1951년 여성인 루이즈 슈뢰더가 서베를린 시장을 지낸 바 있다. 하지만 슈뢰더(1885~1957년)는 정식으로 시장 후보로 나서서 베를린 시의회 선거 승리를 이끈, 이른바 준비된 베를린 시장이 아니었다.

 기파이 시장이 굴뚝 청소부들로부터 취임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출처 : 베를린시 홈페이지) 
 기파이 시장이 굴뚝 청소부들로부터 취임 축하 인사를 받고 있다. (출처 : 베를린시 홈페이지) 

1948년 12월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서 사민당은 64.5%의 득표율로 압승해 시장 후보인 에른스트 로이터의 취임이 유력했다. 그러나 당시 동베를린을 장악하고 있던 소련의 반대로 이 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이때 사민당이 시장대행으로 내세운 인물이 바로 루이즈 슈뢰더 시의원이다. 잠시 대행직을 맡고 있던 그녀는 다음해 시의회에서 시장으로 선출됐고 1951년 1월까지 2년간 그 자리를 지키게 된다. 따라서 베를린 시의회 선거에서 정식으로 시장 후보로 나서서 선거 승리의 기쁨을 맛보고 시장 직을 움켜쥔 경우는 기파이 시장이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번에 구성한 베를린 시정부 내각은 여성 7명에 남성 4명이며, 역대 내각 가운데 여성 비율도 압도적으로 높다. 여성 장관들이 맡은 부처를 보면 부시장 겸 환경교통소비자부, 교육청소년가족부, 내무체육디지털부, 난민노동사회부, 과학보건평등부, 법무인권부 등 핵심적인 업무를 담당한다. 우리나라처럼 여성들이 결코 들러리나 서는 그런 존재들이 아니란 뜻이다.

기파이 시장은 1978년 5월 3일 동독지역 오데르 출생으로 현재 만 43세, 아직은 약관의 나이다. 29세 때인 2007년 사민당에 가입했으며 정당 경력 또한 불과 14년으로 일천하다. 물론 20대 초반부터 좌파 진영과 다양한 교류를 해오기는 했다. 2000년에는 영국 런던 유학 중 노동당의 설리반 구청장을 도왔고, 2002년부터 8년간은 베를린 안에서도 이민자가 많고 실업률도 높다는 노이쾰른(Neukölln) 자치구청에서 유럽담당 국장으로 일했다.

기파이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선출직인 노이쾰른 구의회 의원에 당선되었으며, 5년 후 재선이 되면서 구청장직까지 오르게 된다. 그런데 뜻밖에 3년 뒤인 2018년 기민당-사민당 대연정에 참여 중인 올라프 숄츠(현 연방 총리) 부총리가 기파이를 불렀다. 그녀에게 연방 노인여성청소년가족부장관을 맡겨, 기초단체장에서 연방장관으로 점프를 한 것이다. 이는 유럽행정관리, 직업교육 등을 전공한 기파이가 노이쾰른 자치구에 근무하면서 이민자와 실업자들을 구제하고, 성별 임금 격차를 줄이며, 일과 가정의 병립을 가능케 하는 행정에 성과를 냈다는 데 대한 후한 점수를 주었기 때문이다.

  기파이 시장과 각료들 (출처 : 베를린시 홈페이지)
  기파이 시장과 각료들 (출처 : 베를린시 홈페이지)

하지만 그녀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베를린자유대학에 제출한 박사논문(2010년)이 2019년 표절 의혹에 휩싸인 것이다. 그녀는 지난 5월 장관직을 사임했지만, 곧바로 사민당에서 가장 알짜인 베를린 시장 후보직을 따내는 전화위복을 맞이하게 된다. 또한 그녀는 2019년 12월부터 사민당 연방당의 집행위원(우리나라의 당무위원 격)을 맡아 2021년 총선 승리를 준비하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그리고 노이쾰른 루도우(Ludow) 선거구에 직접 출마해 유권자들의 심판을 받아 당선됐고, 이번에 베를린 시의회에서 시장으로 당당하게 신임을 얻었다.

기초의원 재선에서 기초단체장, 기초단체장에서 연방장관으로, 그리고 또 다시 수도 베를린 시의원(주의원)에서 시장에 이르기까지... 기파이의 정치 이력은 정말로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20대 대통령 선거전이 한창이지만 제8대 지방선거일도 불과 160일 앞으로 다가왔다. 여성 광역단체장 한 명 변변하게 배출하지 못한 이 나라 대한민국에서 그나마 민주주의 선진국 독일 사례를 배우며 익히자. 다만 한 걸음씩이라도 전진하는 것이 바로 '진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땅의 진희 선희 미희 영희 순희들은 결코 실망하거나 좌절하지도 말라. 여러분도 제 2, 제3의 기파이 시장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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